사진을 배우고 나서 한번은 꼭 와서 담아보고 싶었던 공간,
내 대학생활의 전부라고 말해도 아깝지 않았던 나의 공간,
내 이십대의 반을 고스란히 바쳤으며, 그 이십대의 나머지 반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공간...
나는 5월의 어느 토요일에 내 대학 동아리방에 카메라를 메고 추억여행을 떠나온다.


지금의 동아리 후배들의 흔적이 많은 가운데서,
나는 내 흔적들을 찾아나선다.
공연을 위해 민가 원곡을 듣고 채보하던 내 악보.
지금이야 가요든 민가든, 인터넷에서 몇백원 주고 파트별로 악보를 언제든지 구할 수 있지만,
내가 졸업할 때가지만도 그런건 거의 없었다.
각 파트별로 연주자가 알아서 원곡을 채보해야만 했다.
연주자 본인만 알아보도록 채보해 놓으면, 후배들이 써먹지도 못하거니와,
가끔 모자르던 파트를 같은 과 동기가 세션을 해주기도 했기 때문에 나는 공연용 악보를 정성스레 그려놔야만 했다.


공연용 악보도 있지만, 원곡을 듣고선 연필로 지워가며 채보하던 악보도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대학에 들어오기 이전까지 무슨 음악을 듣고, 채보를 하고, 악보를 그리는....
그런 능력 따위는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엔 모르는 것 투성이, 버벅거리는 것 투성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언젠가부터 자연스레 할 수 있게되는 것을 발견하면서 참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신디사이저 앞에 앉아서 악보를 펼쳐보기도 한다.
지금도 예전처럼 잘 칠 수 있을까?

투쟁가의 연주의 절정체였던 단결투쟁가!
분명 내가 채보하고, 만들어놓은 악보인데도, 꽤나 어색하고,
연주 실력은 예전에 비해 뭐라 말할 수 없이 녹슨 느낌이다.
결국, 끝까지 연주해보지 못한다.
혼자 듣기에도 민망했기 때문에...ㅡ.ㅡ

좀더 적극적으로 내 흔적들을 찾아보기 위해, 낡은 캐비넷을 열어본다.
내가 활동했을 당시에 내가 쓴, 회의 서기록을 발견!

서기록을 기록할 당시에는 '이런 걸 꼭 기록해야 하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지금와서 펼쳐보니 보라성 역사의 한 단편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 든다.
99년, 10월 4일, 성열선배의 생일날의 회의록을 보니, 그때의 사건들이 마구 기억난다.
아마도 학부제 반대투쟁이 격렬했던 때 였던 것 같은데....
그땐, 학교 다니기가 살벌했을 정도였다.
장공관 점거가 실패로 돌아가고, 총학생회에서는 아주 강경한 투쟁방법을 택했었던 것 같다.
총학 간부들의 삭발도 있었고, 전체 학생의 수업거부를 진행하면서, 강의실 건물 입구를 혈서로 봉인하기도 했었다.
총학생회의 이런 투쟁에 보라성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함께 투쟁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해보자는 안건이 나왔던 날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살벌한(?) 이야기들을 하면서도, 우리는 회의록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정기공연도 준비하고, 신입생 추가 모집에 대해서도 계획했다.
보라성은 참,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캐비넷에는 아주 여러권의 앨범도 있다.
사진 한장, 한장, 추억이 너무도 많다.
위에 있는 사진은 2000년도 우리 학교 민중연대한마당 공연 사진.
(반주패는 노래패에 가려 한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아래있는 사진은 내가 졸업한 이후의 2002년 어느 외부 공연장에서의 모습인 것 같다.
(아마도 기억에 이주노동자 관련 공연에 보라성이 초청되었던 것 같다)
캐비넷 문에는 내가 활동했을 당시에 각 투쟁현장에서 발행된 스티커들이 붙여져 있다.
지금도 노동계의 뜨거운 감자인 비정규직 노동자 관련된 투쟁들이 대가 대학생인 때부터 시작이었다.

사실, 동방에 오면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우리 동방에 학교의 사계절을 선사해주던 저 창틀에서,
한없이 학교 풍경을 내려다 보는 것이었다.
창밖에 바로 마주한 산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선연히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고,
나를 포함한 우리 동아리 사람들은 때로는 담배 한모금을,
때로는 끝없는 생각을,
때로는 지나가던 사람들을 불러들이기도 하면서
저 창틀에 앉아 있었다.

예전 처럼 걸터 앉아 본다.

내 발 아래로 펼쳐지는 학교 전경.
비가 올때, 이렇게 앉아 한없이 땅에 비가 젖어 내리던 풍경을 보던 기억도 난다.


보라성 동아리 방을 나서서, 동아리방들이 즐비한 입구에 보면 있는 우편함.
대학 2,3학년 때까지만해도, 저 우편함에는 반가운 소식들로 가득했었다.
주로 군에 있는 선배들이 부쳐온 편지들이 많았던 기억.
그러나 지금 저 우편함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먼지가 소복히 쌓여있을 뿐이니까.
인터넷으로 아무리 편리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느날 저 우편함에 놓여져 있는 편지봉투를 발견하던 때의 그 기쁨과 행복은
지금의 인터넷 메일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