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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유라시아 강성대국 고구려 개국시조 고추모가 부여에서 남하하여 도읍지로 정한 골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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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수처럼 산의 정수리에서 차고 맑게 흘러 흘러서 

비겁과 거짓의 복판을 비겁과 거짓의 복판을 뚫고 간다 뚫고 간다"

- <안치환의 노래'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 가사 중> -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중심을 향해 흘러간다
폭포수처럼 산의 정수리에서 차고 맑게 흘러 흘러서
비겁과 거짓의 복판을
비겁과 거짓의 복판을
뚫고 간다 뚫고 간다


중심을 잃어 어지러운 날 내 피를 보태어
사위어가는 잊혀진 나무와 바람과 새와
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의 동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다면
다시 뛰게 할 수 있다면
안고 싶다 안고 싶다


세상에 모든 것들은 중심을 향해 흘러간다
역사의 중심이 어디에서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물기둥 뿜어내는 시원을 찾아 시원을 찾아
물기둥 뿜어내는 시원을 찾아
걸어 갈때 걸어 갈 때

몸부림칠수록 고통이 박혀와
시퍼렇게 질려 생을 마칠지라도
나는 세상의 많은 폭포수들이
일제히 쏟아지는 장엄한 그 시간을
똑바로 쳐다보며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
똑바로 쳐다보며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
기다린다 기다린다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

   정지원 시 | 안치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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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러서지 않는다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의 ≫ 정지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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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의 '자화상'

 

숨이 막히게 강렬한 눈빛의 사내가 있다. 온갖 거짓과 허위를 단숨에 꿰뚫는 무섭게 차가운 얼음과 펄펄 끓는 불을 동시에 지닌 눈동자. 그는 지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당당한 기운에 압도되어 순간 움찔한다. 왜일까?  

 

자화상은 자기성찰이다. 자화상은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감추고 싶은 상처나 구차한 삶의 내력까지 정직하게 투영할 때 존재가치를 갖게 되는 고해성사다. 좀더 폼 나게 포장하려고 하는 순간 스스로 역겨워지고마는 침묵의 시간. 그것은 어두운 밤, 뭇별이 이끄는 길을 따라 끝도 없는 모래사막을 헤매던 사람들을 태운 낙타의 등을 닮았다. 
 

공재 윤두서. 그는 혁명가의 얼굴을 지녔다. 불의와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권력이나 돈 앞에 비굴하지 않을 태생적 반골 기질을 지닌 사내.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설은 우습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그는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고루 갖춘 사람이다. 윤선도의 증손자로 태어나 일찌감치 막혀버린 출세길이 역설적이게도 그를 냉철하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단련시켰다. 권력을 얻기 위해 담합을 일삼고 벗을 버리는 어지러운 시절, 그는 녹우당에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성호 이익 같은 실학자들과 위태로운 시간을 버텼다. 썩은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자신이 잃을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칼을 벼리듯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그것은 헛된 욕망을 버리는 단호한 싸움이기도 했다. 

 

젊은 날 뜻을 함께 세운 벗들이 떠나간 자리를 홀로 지키면서 그는 무엇을 기다렸을까. 윤두서는 그 시대적 관점으로 보면 패배한 사람이다. 그러나 모든 혁명가가 그렇듯 그 역시 자신의 의지를 어떤 순간에도 후퇴시키는 일이 없었기에 오늘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말하고 있다. 그의 눈빛은 시대를 넘어 사람을 향하고 있어 온몸에 전율을 돋게 만든다. 

 

그는 자신의 수염 한 올도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그렸다. 모든 선 하나하나가 살아 숨쉰다. 자신에게도 이렇게 엄격한 원칙을 지켜냈으니 누구의 말과 마음인들 허투루 지나쳤을까. 그는 분명 마음이 넓고 따뜻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말수는 적지만 신중하고 너그러운 사람. 아름다운 것에 민감하고 슬프고 여린 것들을 보호하려는 품이 넓은 사람. 초록 비가 뚝뚝 듣는 녹우당에서 섬세한 세필로 그는 불우한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그런데 그의 눈시울이 붉다. 그것은 그가 오랜 세월 겪어낸 슬픈 상처의 기록이기도 하다. 스무 살을 넘긴 시절부터 마흔 가까이까지 계속 되어온 그가 사랑하던 사람들의 연이은 죽음. 그 애타는 속울음의 흔적이 이렇게 아프게 남아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그를 믿고 사랑한 사람들을 위해 그가 그려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윤두서의 '석공'

 

 윤두서는 민중을 사랑한 화가다. 그래서 그를 우리나라 풍속화의 시원이라고 한다. ‘돌을 깨는 석공’은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한 땀방울을 생생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뛰어난 관찰력을 지닌 화가로 정평이 난 그답게 가장 현장감 있는 장면을 포착해냈다. 

 

마음이 지극하게 깊어질 때 진실을 담아 써낸 작품은 세월을 뛰어넘어 언제나 상처 입은 시대를 어루만지고 각성하게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노동에 대한 존엄한 자각이 없었다면 이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는 쇠망치로 돌멩이를 내려치고 있다. 처참한 가난과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의 족쇄를 깨부수듯 힘껏 돌을 깨고 있다. 그러나 돌멩이가 왜 돌멩이겠는가. 그것은 생각처럼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다시 어깨가 빠져라 힘을 쓰며 돌을 깨부순다. 조금 있으면 돌은 반드시 깨질 것이다. 그것은 마주 앉은 노인의 표정을 보면 안다. 돌의 파편이 튈까봐 정을 들고 조금 뒤로 주춤 물러앉는 듯한 자세의 노인. 그러나 노인이 뒤로 물러나 앉은 것은 자신의 안위 때문이 아니다. 혹여 자신이 다치기라도 해서 이 착한 젊은이가 뻔한 형편에 약이라도 지으러 가게 될까봐 조심하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윤두서의 속 깊은 표현력, 이것이 그가 열망한 아름다운 세상의 풍경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초여름 어린 나무들이 자라나는 소리처럼 싱싱하다.

 

윤두서. 그가 그립다. 그의 자화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해득실을 좇아서 수시로 말을 바꾸는 이들이 여전히 득세하며 세상을 지배한다. 그들의 구차한 변절을 향해 호통을 칠 대장부. 강인하고 당당하게 마침내 역사가 된 사내의 사자후가 그립다.  

 

恭齋  尹斗緖 (윤두서)

 

조선 중기 화가.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종애(鐘厓). 본관은 해남(海南).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이다. 1693년(숙종 19)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과 시서화로 생애를 보냈다. 말년에는 해남 연동(蓮洞)에 은거하였고, 1774년(영조 50)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조선 중기의 화풍을 바탕으로 하여 전통성이 강하였고, 인물·동식물은 그릴 때 반드시 종일 관찰하여 그 참모습을 그리려고 애썼다. 정선(鄭敾;謙齋)·심사정(沈師正;玄齋)과 함께 조선시대 삼재(三齋)로 일컬어졌다. 해남에 종손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240호로 지정된 《자화상》이 대표작이며, 목기 깎는 장면을 그린 《선차도(旋車圖)》와 나물캐는 여인을 그린 《채애도(採艾圖)》 등 풍속화는 18세기 중·후반의 풍속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의 실학적 태도가 엿보인다. 그의 화풍은 아들 윤덕희(尹德熙)와 손자 윤용(尹熔)에게 계승되었고, 사실주의적 태도와 회화관은 정약용(丁若鏞)의 회화론 형성에 바탕이 되었으며, 실학적 태도는 이익(李瀷)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유작들은 보물 제481호로 지정되었는데 《해남윤씨가전고화첩》에 《자화상》 《백마도》 《선차도》 등이 전하며, 그 밖에 《노승도》 《출렵도》 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서에는 《기졸(記拙)》 《화단(畵斷)》이 있다.